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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수빈
    Character 2022. 6. 10. 02:21

     

     

    고수빈

    高首斌

     

    28

    (1994. 09. 17)

    181 / 72

     

     


     

     

    ㅤㅤ진희는 사탕을 문 입을 오물거렸다. 수빈은 양갈래 머리로 쫑쫑 땋아 내리던 손을 멈추고 보라색 방울을 집어 들었다. 밤색 머리카락이 퐁실한 숯으로 묶였다. "우리 진희, 머리 마음에 들어?" 거울을 보여주자 진희는 동그란 뒷통수를 작게 주억였다. 형과 달리 진희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수빈이 진희를 예뻐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기일인데, 그래도 같이 가시잖고." 형수는 어설프게 웃었다. 형수는 수빈을 볼 때마다 늘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거기에는 기묘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역시나 형은 말이 많다. 무슨 말을 짓껄여댔을지가 빤했다.

     

    ㅤㅤ"무덤 많아, 여기."

    ㅤㅤ"자주 와봤잖아. 진희 무서워?"

     

    ㅤㅤ진희는 고개를 저었다. 한 줌도 안 되는 고사리손이 놓칠세라 수빈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김포성당묘지에는 새 우는 소리가 섞인 풀내가 났다. 풀 사이로 난 돌길을 밟던 진희는 손으로 곁가의 무덤들을 하나씩 짚었다. "다 죽은 거지? 아빠처럼?" 수빈은 웃음을 터트렸다. "응. 다 죽었어." "왜?" 올려다보는 일곱 살배기의 얼굴은 순수했다. 수빈은 왼쪽 무릎을 꿇고 녹아들듯 보드라운 어린애 뺨을 감싸 쥐었다.

     

    ㅤㅤ"글쎄, 이유가 너무 많네. 사람은 너무 쉽게 죽어서."

    ㅤㅤ너 저기 숨으면 되겠다. 괜찮아, 지금은 소각 시간 아냐.

    ㅤㅤ"우리 몸은 고통에 약하고,"

    ㅤㅤ편해지고 싶지 않아요? 저라면 그럴 텐데.

    ㅤㅤ"우리 마음은 유혹에 약하거든."

    ㅤㅤ형, 딸 생각해야지.

     

    ㅤㅤ유리알 같은 눈이 반짝였다. 진희의 눈동자는 머리카락과 같은 밤색이었다. 그와 똑같은 빛깔의 눈으로 수빈은 웃었다. 진희는 오목조목 박힌 이목구비나 콧등에 선명히 찍힌 점이 수빈과 꼭 닮아서, 어디 데리고 나가면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녀지간으로 오해받을 정도였다. "아빠 얼굴 기억나지?" 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꿈에 나와. 나한테 인사해줘." 수빈은 웃으며 진희의 뺨에 입을 맞췄다. 형이 죽은 것은 2년 전의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수빈은 형에게 별 악감정이 없었다. 그 여리고 다정한 호인은 말 많고 툭하면 눈물을 글썽여대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이유 없었다. 28살의 평범한 신입사원 고수빈이 상종 못 할 말종이자 명실상부 쓰레기인 까닭은 그 평면성에 있었다.

     

    ㅤㅤ깜빡. 빨간불이 켜졌다. 진희는 뒷좌석에서 벨트를 맨 채 잠들었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 진희를 한참 보던 수빈은 팔을 뻗어, 진희의 볼을 건드리고 반쯤 풀린 머리 방울을 고쳐묶었다. 진희는 놔둬. 나 하나로 족하라고, 씹새끼야. 울부짖던 형의 목소리가 문득 귓전을 두들겼다. 수빈은 고개를 작게 가로젓고 몸을 바로했다. 깜빡. 녹색등이 들어왔다. 엑셀을 밟자 차체가 부드럽게 도로를 달렸다. 포도 사탕이 혀를 보라로 물들이며 두 개째 녹을 무렵에, "삼촌." 잠에서 깬 진희가 옹알거렸다. "그럼 나도 죽을 수 있어?" "사람은 다 죽어. 언젠가는 약해지거든." "삼촌은 언제 약해져?" 그 말에 수빈의 시선이 백미러로 돌아갔다. 백미러에 비친 진희는 수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빈은 목울대 뒤로 침을 삼켰다. 척추를 타고 짜릿한 전기가 흘렀다. 알아? 진희는 날 닮았어, 형이 아니라.

     

    ㅤㅤ"삼촌이 죽었으면 좋겠어?"

    ㅤㅤ"응. 이렇게 말하면 나 미워해?"

    ㅤㅤ"아니야. 삼촌은 진희 사랑해."

     

    ㅤㅤ수빈은 진희의 솔직한 말들이 좋았다. 영악하게 반짝이는 눈과 순수를 표방한 악의와 달콤한 생김새와 사랑받는 일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좋았다. 명백한 자기애였다. "언젠가 삼촌이 약해지면 진희한테 꼭 말해줄게." 진희는 형을 자살로 떠민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수빈은 그게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R&D부서 연구개발지원팀 입사 3개월차 신입사원

    H대 재학 당시 전설의 컴공과 팅커벨

     

    살가운 태도와 웃음

    애매한 거리감

     

    떨어지는 공감력

    악의 없는 악의

    맹목적 자극 추구

     

    장골에 통뼈

    밤색 눈과 머리카락

    공기 반 소리 반의 목소리

    포도 사탕과 포도향 액상 전자담배

     

    7살 조카 고진희

     

     

     


     

    곽기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기억 안 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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