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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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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15학번
ㅤㅤ유년기는 스즈끼와 시노자끼, 체르니와 함께였다. 알캉과 기돈을 숭배하던 중학생 시절에는 종일을 악보에 묻혀 지냈다. 미친 천재들을 사랑했다. 88개의 건반과 4개의 현이 전부였던 날들이었다. 어느 날엔가 별연간 예고 입시를 포기하고 트랙을 달렸다. 15km부터 24km에 달하는 반마라톤 종목이었다. 코치는 독기도 없는 놈이 몸은 딱 그짝으로 났다며 칭찬어린 험담을 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뛰고 있으면 낯빛이 창백해지고 머리가 희어졌다. 완주 끝에 피를 토할 듯이 쿨럭이며 드러눕는 순간들이 좋았다. 본격적인 훈련에 발을 들이고 도단위 대회에서 처음으로 입상한 날에, 태경은 육상을 관뒀다. 그렇게 발뺌한 것들이 발치에 수북히 쌓여만 갔다.
ㅤㅤ이태경은 상당히 요란한 꼴이었는데, 마주치는 족족 눈길을 끌 지경이었다. 얌전히 두는 일 없는 머리색 하며 온통 박아놓은 쇳덩이에, 올드스쿨 타투로 얼룩덜룩한 몸에는 화려한 패턴의 옷을 걸쳤다. 사회복지학 전공이라는 소개말에는 누구나 한 번씩 귀를 의심했다. 사실 태경은 꼬락서니만큼 강퍅한 인품은 아니었다. 정확한 발음의 미성으로 낭랑하니 말하다가 잔웃음이 터지고야 마는, 썩 살가운 태도였다. 희멀건 낯이 살강히 웃어대면 다들 머릿속 첫인상을 조금 누그러뜨리고는 했다.
ㅤㅤ이것저것 파놓은 우물이 많았으니 잡지식이 많고 말주변이 좋았다. 다만 제 깊이가 얕은 줄도 알아 어느 시점에서는 꼭 화제를 돌렸다. 뭐든 할 줄 알고 뭐든 잘하려 들지를 않았다. 적당히, 재밌게만. 난 어려운 거 싫더라. 입버릇처럼 중용을 말하는 위인이었다. 넉넉한 집에서 나서 그런가, 애가 진득한 맛이 없다며 주변인들은 혀를 찼다. 너는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넘어질 게 겁이 나서 멈추면 어떡해. 그런 말을 들은 날에는 전에 없이 화를 냈다. 사람 대할 때도 마찬가지의 태도였다. 마음 가는 사람을 주변에 여럿 두고 절대로 깊이까지는 끌고가지 않는, 제법 못된 짓을 했다. 그렇게 두고 보면 썩 괴팍한 됨됨이기도 했다.
ㅤㅤ가끔은 한때 미쳐있던 카프리스 24번을 듣고 라벨의 에뛰드를 쳤다. 밴드 동아리에서 건반 세션을 맡거나 마라톤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재미가 많으니 되려 재미가 덜했다.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태경은 제대 후 1년을 더 휴학하고서야 학교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캔버스와 함께였다. 휴학 기간동안 경원예대의 드로잉과 미술사를 청강하며 태경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뜸 붓을 집은 외동아들에 대해 집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언제는 전공에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늘 그러했듯 저러다 말겠거니 하는 반응이 전부였다. 태경은 그 반응에 반쯤 공감했다. 나머지 반절은 막연한 바람이었다. 물장구는 지겨워. 심해로 가라앉고 싶어. 항상 태우다 잘라버리는 심지가 언젠가의 점화에 기어코 폭발하기를 바랐다. 딱 그 무렵에 익숙한 얼굴과 재회했다.
다량의 취미 보유
유년기에 몰두했던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꽤 수준급.
외에도 밴드 동아리 활동으로 배운 드럼, 믹싱과 디제잉, 춤 등 취미가 많다.
현재는 그림에 몰두 중. 뭐든 할 줄은 한다. 내세울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연락하는 사람 다수
딱히 만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