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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범
洪 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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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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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영어 미술학원 원장
ㅤㅤ동양화라는 말이 싫었다. 이거는 동양화가 아니라 한국화. 동아시아 삼국 그림의 차이를 입아프게 떠들어대도 남들 눈에는 대충 한지에 그렸다 싶으면 동양화라는 것을 범도 알았다. 실은 저 스스로도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강 써갈긴 3지망이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전공하게 된 것이기는 했다. 얼결의 전공을 석사까지 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졸업작품을 마치던 날에 긴 부정을 끝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거는 말이 안돼. 그런데 그렇게 됐다니까? 범은 기어코 수묵 담채와 진채화를 사랑하게 됐다. 교수가 한숨을 내쉬던 범의 석사 논문은 사임당에게 바치는 연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ㅤㅤ준학예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꿈에 그리던 인사동 대형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던 경력은 이 년을 채 못 갔다. 내가 큐레이터지 영업사원이냐? 그즈음 어금니의 치통을 앓았는데 하도 이를 북북 갈아 그런 듯했다. 타 갤러리와의 기싸움도 작가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는 것도 참기 힘들었다. 결국 어느 날엔가 인사동을 뜨고 동네 상가에다 어린이 미술학원을 차리면서는 차라리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마음껏 몸에 그림을 새겨넣고 이제는 내 그림을 그려야지, 작정을 했다.
ㅤㅤ그게 또 맘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몇 달은 원생 모으기가 힘들었다. 문신이야 소매 긴 옷으로 열심히 감춘다지만, 운동으로 거대하게 불려놓은 체격에 겁먹은 학부모와 아이들을 앞에 두고 범은 어쩔 줄을 몰랐다. 혼자 거울을 보며 갤러리에서 일할 적에도 해본 적 없던 표정 연습을 했다. 또 눈매는 순해서 어린 인상이라, 분명 얼굴의 문제는 아니었다. 학원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범을 구한 것은 영어였다. 큐레이터 취준할 적에 이 악물고 배웠던 영어를 겸해서 가르치기 시작하니 그제야 학원에 원생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Don't do that, kiddo! 영어를 가르치는 한국화가라니. 딸기맛 사탕 하나로 싸우는 핏덩이들을 말리고 있자면 허탈했지만, 적어도 더 이상 치통은 없었다.
한국화 전공 석사 학위
준학예사 자격증
前 인사동 대형 갤러리 큐레이터
본가는 전라도 화순군 능주면
나이 터울 많이 지는 동생 홍옥(女)
한여름에도 학원 내에서는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티 고수
바이크 덕후 헬스장 붙박이
거기 트레이너랑은 같이 짐 문 닫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