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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黃規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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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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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 박수
ㅤㅤ흰 털에 눈이 파랗고 몸이 기름진 고양이는 이제 없다. 죽은 것을 안고 울어제끼던 피붙이는 어떻게 눈물 한 방울 없을 수 있냐고 물었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전부터 매일 직면한 죽음에 피로만 남은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갈 때 됐지." 답하니 주먹이 날아왔다. 몇 년만의 주먹다짐이었다.
ㅤㅤ탐을 내지 말아라. 언제나 한 발치 물러나거라.
ㅤㅤ내림굿도 신병도 없었다. 만신은 날 때부터 함께였다. 조모에게서 격세로 옮겨붙은 무당신이라고 했다. 신아비는 너같은 놈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놈 그릇이 어떻게 되련가, 허주도 아니고 만신을 달고 났다며. 너는 결코 나쁜 마음을 먹지 말아라, 티끌 없는 마음으로 모셔라 입버릇처럼 말했다. 규태는 그 말에 늘 퉁명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죽 짖으며 씩 웃고는 했다. 옹알이를 떼고서부터 고사리 손으로 생쌀을 쥐었던 황규태는 신아비가 우스웠다. 종교가 아닙니다, 장사지. 만신도 세상도 우스웠다.
ㅤㅤ구원은 없고 열심히 살아보십쇼. 앞날은 비싼 값에 팔아드릴테니.
ㅤㅤ검은 셔츠 위로 붉은 무복을 걸쳤다. 꽃갓에 튜베로즈를 꽂고 주렴을 매단 방울을 흔들었다. 붉게 물들인 팥을 던지는 손짓이 단정했다. 굿판에 들지 않는 강신무라, 차마 박수라고도 말 못할 근본 없는 점쟁이였다. 사기꾼 소리도 숱하게 들었다지만, 침착히 웃는 입술이 달싹이기 시작하면 누구든 입을 닫았다. 신촌 골목 어귀의 신통관은 그렇게 입소문을 탔다. 어쩌면 서늘한 눈매로 넌지시 던지는 추파 때문일지도 몰랐다.
‣ 점쟁이 흉내내는 강신무
미취학 아동 시절 아기동자로 이름을 날린 전적이 있다. 의무교육 수료 후 전라북도 남원군의 큰무당 산하 신아들로 입문해 10년간 수행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검정고시를 치뤘다. 현재 신촌에서 신통관 운영.
‣ 365도 회전한 마이페이스
성심껏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 기껏해야 인상을 쓰거나 입을 죽 찢는 정도. 이마저도 잘 드러내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퍽 차분한 인상을 받을 지경이지만…….
‣ 은월동 제 2교도소 교도관 황규배의 동생
닮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고, 다만 물욕만큼은 서로 인정하는 바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투닥대는 사이라지만, 아직도 죽은 고양이 차차가 언급되면 서로 눈을 부라린다.
‣ 심리상담 2급 자격증 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