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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영인
    Character 2022. 6. 10. 02:45

     

     

    구영인

    𪚵朠湮

     

    35

    186/70

     

    푸른바다거북

    조향사

     


     

     

    ㅤㅤ"흰 색 좋아하세요?"

     

    ㅤㅤ흰 색이요? 아니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아요. 몸통도 하얀 색이고 체모도 하얀 색이고 25년간 살았던 실험실의 수조 바닥 타일도 하얀 색이었지만 딱히 좋다 싫다를 가름지을 만큼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러고보니 6년 11개월 13일 전에 집 앞 사거리 신호등 아래서 한 여자가 흰 색은 순수성의 상징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가 누구냐고요? 나도 모르죠. 단지 그가 단발머리를 파란색 고무줄로 묶고, 갈색의 캐시미어 재질 코트를 걸쳤고, 아몬드형 눈에 주근깨가 많이 박힌 얼굴이라는 <기억>이 떠오를 뿐이에요. 아마 야외 활동이 잦은 직업일 거예요. 손목에 시계 모양으로 탄 자국이 있었거든요. 장미향 샴푸 냄새가 땀냄새를 다 덮지도 못했고. 건강한 기색이었는데 목소리에 가래 끓는 소리가 섞인 걸 보니까 흡연 경력이 좀 되어 보였어요. 5초 후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자마자 곧장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를 보니까, 성격도 좀 급한 것 같더라고요. 혹시 내가 천재냐고요? 관점에 따라 달라지죠. 사전에 실린 정의대로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맞을 거고, 한자음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목이라고 보면 틀린 말이죠. 왜냐하면 나는 연구소에서 유전자 조작 실험으로 만들어진 거북이니까요. 내 대뇌피질을 활성시킨 건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죠. 나를 가짜 거북이라 말해도 좋아요. 바다거북이지만 바다에는 가본 적도 없는 걸요. 백색증을 가지고도 1000분의 1의 확률로 성장했으니 내가 운 하나는 좋았네요. 물론 사람은 신이 아니에요.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개중 가장 심한 부작용은 당신이 내게 질문한지 0.05초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약 복용 시간을 놓쳤거든요. 그 약을 먹으면 사고가 지나치게 둔해지는 하지만, 그래서 가끔씩 멍청하게 굴기도 하지만, 어차피 사람들은 복용 전후를 잘 구분하지 못하더라고요. 이쯤이면 내가 미쳤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글쎄요, 나도 종종 그런 의심을 해요. 과연 6년 11개월 13일 전에 집 앞 사거리 신호등에서 마주친 그는 내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맞을까요? 아니면 내 뇌가 멋대로 감각의 파편들을 조립하고 재구성해서 만들어낸 가짜 기억일까요. 가끔은 어제의 섹스와 몇 년 전의 아침 식사가 같은 시간대의 일처럼 느껴지고 나는 둥실둥실 무중력의 바다를 떠다니죠. 그러니 나는 하루를 아주 평평하게 만들어야 해요. 동그란 창으로 들어온 볕에 반짝이는 공병들과 향이 가득한 공방과 스탠다드 재즈와 내 키만한 이레카야자 화분같은 것들이 그렇죠. 사실, 아쿠아리움은 조금 위험해요. 그 빛나는 파랑은 너무 강렬해서……. 이제 1초가 지났네요. 슬슬 입을 열어도 되겠죠. 가증스러워도 봐주세요. 가짜 거북이 가짜 말 좀 할 수도 있죠.

     

    ㅤㅤ"흰 색이요? 아, 나쁘지 않죠."

     

     

     


     

     

     

    루시스틱 푸른바다거북

    몸길이 41cm

    실험용 유전자 조작 거북

    열성 알파

     

    대뇌피질 활성화

    공감각적 해석 매커니즘

    빠르고 난잡한 사고 회로

    신체와 정신 양방의 부작용

    억제제 복용

     

    눈치가 없는 / 없어보이는

    공상과 무위

    정중하고 과장된 연극톤

     

    15평 남짓의 아담한 개인 공방

    더운 온도의 실내

    한 쪽 벽면을 꽉 메운 화분들

    차 수집 취미

     

     

     

     

    I simply remember my favorite things,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간단하게 기억해내면,

    and then I don't feel so bad.

    그러고나면 난 슬프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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