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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서
孫昇曙
24
1998. 01. 19
183/70
박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ㅤㅤ□□는 데미안을 내밀었다. 생일 선물. 손승서는 이게 뭐야, 영 시퉁한 낯짝이었으나 속내로는 내심 좋았다. 눈썹뼈가 불거진 □□는 또래보다 확연히 멀쑥했고, 물에 담군 물푸레나무처럼 차분한 파랑이었다. 책에는 영 관심이 없었지만 승서는 □□가 다른 애들처럼 군것질이나 카드 지갑 같은 선물을 하지 않을 것을 알았고, 그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ㅤㅤ□□과 승서는 중학교 입학식 때 같은 반에 배정된 것을 시작으로, 3년을 내리 붙어있었다. 둘은 창북중 육상부원으로 도내 대회에서 상을 여러 개 탔는데, □□의 종목은 800m 달리기였고 승서는 110m 허들이었다. 경남 소년 체전 출전 당시 손승서는 컨디션 난조로 헛구역질을 했다. □□는 창백해진 승서의 등을 뚜덕이고 찬물을 건넸다. 니는 왜 긴장을 안 하는데? 물어보자 □□는 보조개를 볼에 패며 웃었다. 쫄면 우야노, 싸우러 갈 긴데. 이상한 충동이 치밀어서 승서는 입을 닫았다. 아직 뛰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둥둥거렸다.
ㅤㅤ중3 여름, 7월은 한창 더웠다. 훈련이 끝난 일곱 시, 노을을 들이부은 교실에서는 습한 냄새가 났다. 그 책 읽어봤어? 질문에 승서는 대답을 못 했다. 들춰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ㅤㅤ"승서야. 싸워야 된다."
ㅤㅤ"뭐랑? 내 싸움 못 하는데."
ㅤㅤ"뭐든. 니 뛸 때 허들 있제? 앞으로는 넘을 생각 말고, 때려 뿌시라."
ㅤㅤ그래야……. 승서는 □□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도, 이어진 입맞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를 밀치고 도망칠 때에도, 한참을 달리다가 멈춰선 어느 골목에서 울음을 터트렸을 때에도 여전히 세상은 뒤죽박죽이었다. 해가 넘어가도록 울던 승서는 그 날 밤 □□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는 <육상부 걔네>에 대한 가쉽이 쭉 돌았다. 목격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승서는 그날로 육상부를 관뒀다.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친 □□가 승서의 팔을 붙들었을 때, 승서는 주먹을 날렸다. "더러운 새끼." 열 여섯 손승서의 결론이었다.
ㅤㅤ그래야 태어날 수 있다.
ㅤㅤ짙은 색의 오크목은 강도가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여전히 단단했다. 저린 팔을 주무르던 승서는 낡은 라꾸라꾸에 주저앉았다. 과실 구석에서 안 친한 후배 몇 명이 승서를 흘금거렸다. 승서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녕?" 그래, 내가 조소과 손게이야. 신기하니? 스물 넷의 손승서가 완전한 '오픈' 성향 동성애자가 되기까지, □□가 선물한 데미안은 책등이 너덜너덜해지고 표지에 손때가 묻었다. 맨정신으로 덤벼들기에 손승서의 세계는 너무 단단한 껍데기를 가졌다. 그래서 손승서는 반쯤 미치기로 했다. 알을 깨기 위하여.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¹
¹Demian - Herman Hesse
조소과 손게이
걸어다니는 커밍아웃
박리대 퀴동 (박)리퀴(어)드 회장
더워죽어도 레자
얼어뒤져도 레자
손게이 / 손(술)탱크 / 손친놈 등 별명 다수
경남 창원의 본가
손때 묻은 데미안
염소자리
허스키한 중저음
불가리 뿌르 옴므
레종 프렌치 블랙
왼쪽 어깨의 무지개 날개 타투
하현희
넌 아가리만 싸물면 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