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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희목
    Character 2022. 7. 22. 20:10

    moralless

     

     

    함희목

    咸晞目

     

    29

    187 / 68

     

    담화제약 신약개발1팀 수석연구원

     

     


     

     

      담화제약은 결국 신약 <스냅>의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스냅>은 일종의 증추신경흥분제로, 뇌의 각성을 돕는 콜린알포세레이트 기반의 약물이다. ADHD와 기면증, 알츠하이머 등의 뇌질환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던 해당 약품은 신약 시장에서 획기적인 이목을 끌었고, JH증권의 자금을 투자받아 빠르게 완성 단계에 이른 시약이었다. 3상 결과만을 앞두고 있던 <스냅>의 개발이 갑작스레 중단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스냅>은 생산 라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됐고, JH증권은 헛물만 켜게 된 판국이었다.

     

     

    도덕 역시 욕망을 표현하는 상징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세상에 사랑은 다 뒤졌다는 게 함희목의 정론이다. 몸에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니는 간지러움이나 신의 사랑과 가장 유사하다는 모성애는 전두엽의 오류이자 미디어와 사회가 빚은 왜곡된 신화이자 모든 손해 보는 이들의 서러운 공치사; 적어도 함희목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딱히 함희목이 니체의 신봉자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고, JH증권 산하의 주화 보육원에서 성장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는 물론 한 개인의 유년기에 대한 수식언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함희목에게는 딱히 불행이랄 것도 없었다. 적어도 세상은 함희목에게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 또한 함희목이 여타 좋은 학군의 부모 있는 상급생들을 제치고 JH장학재단의 눈에 들게 된 이유가 아니었다. 누구나 욕망과 노력에 따른 합당한 결실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함희목이 뛰어나고 이른 학업적 성취를 얻은 이유는 그래야만 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16세에 H대 약대에 수석 입학한 함희목이지만 열 살의 자신이 어쩌다 □□의 앞니를 박살냈는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마 미성숙한 XY 염색체들의 흔한 서열 싸움일 수도 있고, 보육원 출신 영재를 향한 평소 같은 시덥잖은 시비였을 수도 있다. 과정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의 앞니가 박살났고, 의자를 휘두른 손의 주인이 함희목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다. 담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원장 어머니는 비분강개하며 함희목을 체벌실에 가뒀고, 그날 저녁 내내 외출했다가 밤 늦게야 돌아왔다. 그 날 원장 어머니가 어디를 다녀왔고 누구를 만났는지 함희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함희목은 다음날 멀쩡히 학교에 나갔고, 다시는 □□를 볼 수 없었다. 애들 싸움이라기엔 과했고 충분히 징계가 떨어질 만큼의 폭행을 저질렀지만 함희목의 생기부는 여전히 깨끗했고 아무도 그 일을 들먹이는 사람은 없었다. 함희목은 그 이유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열 살의 함희목은 멘사 회원이었고 바로 다음 주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참가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함희목은 IMO에서 42점 만점을 받았다. 원장 어머니는 환히 웃으며 함희목에게 값비싼 전문가용 큐브를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함희목은 □□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담화제약 신약개발1팀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함희목은 입사 이래 처음으로, 출근과 동시에 퇴근 욕구를 느꼈다. 대형 제약회사의 1팀 답게 연구진들은 최고의 커리어와 중견의 연륜을 자랑했고, 고작 석사 출신에 이십대 애송이에 불과한 함희목이 수석 연구원인 걸로도 모자라 신약 개발을 선두한다는 사실을 대부분 탐탁치 않아 했다. <스냅>의 실패가 내심 꼬숩기까지 한 표정들이었다.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개인 연구실로 들어온 함희목은 평소처럼 흰 실험복 가운을 걸쳤다. 노크와 함께 들어온 신입 연구원 하나가 함희목의 책상에 서류 폴더를 내려놓았다. 함희목은 연구원을 한 번 돌아보고, 마저 가운의 단추를 잠궜다. 언제나처럼 맞춤하게 걸린 비웃음이 입가에 자리했다.

     

      "사직 권고서는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팀에서 종합한 연구개발 주제 선정 후보 목록입니다, 팀장님."

      "이제 내가 그걸 왜 니들끼리 정했냐고 화낼 순서입니까?"

      "그럴 줄 알고 저를 보내신 거죠."

      "하긴, 막내가 총대 매야지."

     

      신입 연구원 고수빈은 그 곱상한 낯짝에 걸맞게 꽃내가 나도록 웃었다. 함희목은 가슴이 갑갑해지는 느낌에 목을 옥죈 타이를 잡아내렸다. 고수빈이 총대를 맨 까닭은 모자란 짬밥 뿐만이 아니었다. 팀 내에서 고수빈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주화 보육원에서 자라나 JH장학재단의 막대한 수혜를 받은 함희목은, JH증권 대표이사의 차로 출퇴근하는 고수빈이 불편했다.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다. 함희목은 책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서류를 집어드는 대신, 책상 한 켠의 큐브를 집어들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아귀 속에서 색색으로 각 면이 정렬되어 있던 큐브는 순식간에 색들이 섞여 엉망이 되어갔다.

     

      "그대로 가져다가 분리수거 하세요. 아, 버리기 전에 파쇄 한 번 돌리고."

      "네?"

      "임상시험 자원자 모집 공고 띄우세요. 적어도 삼개월 후엔 검증 들어갈 테니까."

      "지금 <스냅>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건…… 팀장님?"

     

      고수빈이 놀란 이유는 개발 강행이 아니었다. 함희목의 무릎이 그대로 꺾였다. 큐브가 바닥으로 떨어져 탁, 탁, 타탁, 두어 바퀴를 굴렀다. 의자 위로 쓰러졌던 함희목은 앓는 소리도 하나 없이 인상만 썼다. 이미 멍투성이인 무릎을 바닥에 또 박으니 죽여주게 아팠다. 탈력 발작이다. 열만 뻗치면 몸에서 힘이 빠지는 증상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대학원 재학 중 기면증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함희목은 차라리 안도했다. 누군가 함희목을 태생적 악인으로 부른다면 그는 얼마든 찬성해줄 의향이 있었다. 악몽과 환각과 마비로 점철된 밤을 드러내는 것보다 상종 못할 쓰레기 취급 받는 게 백 배는 나았다. 함희목은 그 모든 끔찍한 밤들을 치부로 여겼다. 어쩌면 <스냅>이 실패한 이유는 이 빌어먹을 수면장애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거다. 쓰러진 사람을 앞에 두고도 걱정하는 기색 하나 없이 곤란한 미소로 함희목을 내려다보던 고수빈은 몸을 숙여 함희목과 눈을 맞췄다. 짙은 밤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저를 똑바로 들여다보자, 알 수 없는 소름이 훅 끼쳤다.

     

      "팀장님, 피험자 죽었잖아요."

     

      <스냅>은 경쟁약보다 효과가 월등히 우수했고, 황폐화된 한국 신약 개발 시장에서 신기루처럼 나타난 오아시스였다. 시판 전 임상시험의 마지막 단계, 3상까지 진입한 <스냅>이 미끄러진 까닭은, 결과적으로는 임상 실패였다. 3상 시험 당시 피험자 75세 알츠하이머 남성 최복수는 <스냅>의 2회차 투여 후 10시간 후에 사망했다. 함희목은 실험에 부적합한 고령과 지나치게 진행된 알츠하이머의 뇌 파괴율이 실패의 이유라 판단했다. 어쨌거나 사망선고와 임상 실패 딱지의 위력은 강력했다. 의자의 팔걸이에 뺨을 댄 채 함희목은 시선을 피했다.

     

      "새 이름이나 고민해봐요. 식약처에 걸리기 전에 간판이라도 갈아 끼워야지."

      "아직도 <스냅>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세요?"

      "확신합니다. 내가 틀렸을 리 없어요."

      "팀장님. 기면증 있으시죠?"

     

      숨긴다고 숨겨질 사실은 아니었다. 담화제약, 그것도 신약개발1팀의 연구원들은 함희목이 복용하는 각성제와 몇 가지 증상만으로도 충분히 기면증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면전에서 대놓고 들은 적은 처음이라, 함희목은 어금니를 물었다. 고수빈은 그제야 몸을 일으키고 허리를 쭉 폈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딱, 털실뭉치를 바라보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

     

      "나이 29세, 기면증, 4년 전 발병 진단, 메틸페니데이트 복용중, 여타 기저질환 없음, 수술 전적은- 기흉이었죠?"

      "와, 내 뒷조사라도 한 겁니까?"

      "팀장님. 회사가 호구예요? 3상까지 간 걸 비임상부터 다시 한다고 하면, 자금은 어디서 끌어오실 건데요. JH는 이미 손해 봤으니 더는 투자 안할 거예요. 그러다 임상 실패한 주제에 개발 강행하는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기라도 하면……."

      "나부터 고수빈 씨까지 개발1팀 전부 줄줄이 모가지겠죠. 남호재 이사님은 재판 회부될 지도 모르고. 그래서요?"

      "복용 예후는 좀 어떠세요? 기면증 말이에요."

      "지금 대체 무슨 소릴……."

      "뇌 각성제라니, 시험 대상자 조건이 퍽 까다롭죠. 그래서 고령자를 예외적으로 받았던 거잖아요. 아……. 우리가 그랬었던가요?"

      "……."

      "아직 안 올라갔어요. 피험자 세부 명단이랑 데이터요."

     

      흔들리던 함희목의 시선이 딱 멈췄다. 고수빈의 말은 뒤죽박죽으로 섞인 어순에 그 뜻이 모호했지만 내포하는 바가 명백했다. 사망한 [최복수]를 피험자 명단에서 삭제하고, 새 피험자 [함희목]의 데이터로 대체하는 것. 이를 상부에서 재검토한다면 개발이 재개될 수도 있다. 단, 그게 가능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붙어야 한다. "그걸 덮을 수…… 있을 리가……." 여기부터는 범죄의 영역이다. 말을 짓씹는 함희목을 향해, 고수빈은 바닥에 떨어진 큐브를 주워 건넸다.

     

      "팀장님. 보통 큐브 맞출 때 얼마나 걸리세요?"

      "……30초 정도. 빠르면 10초."

      "이번 큐브는 얼마만에 풀 수 있으세요? 적당한- 은폐가 받쳐준다는 조건 하에."

     

      함희목은 분노와 고민이 범벅된 눈으로 헝클어진 큐브를 바라보았다. 함희목은 아직도 신약 <스냅>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그러니까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수빈은 JH증권 곽기태 대표와 모종의 관계 속에 있으며, JH증권은 <스냅>의 개발에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유치했다. 고수빈은 악마처럼 아찔하게 웃으며 헝클어진 큐브와도 같은 제안을 내밀었다. 바람소리가 섞여들어 거친 음색이었으나 불면 날아갈 듯 가볍기 짝이 없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주화 보육원 출신

    담화제약 최연소 수석연구원

     

    기면증; 탈력 발작, 잦은 가위, 수면마비, 입면환각

    메틸페니데이트 복용

    군면제; 기흉 수술

     

    뒤틀린 천재

    도덕성 결여

    늘상의 조소

    과신과 오만

     

    뼈가 두드러진 손발과 몸

    무릎과 몸 곳곳의 멍

    날카로운 이목구비

    안경줄

     

    와인과 위스키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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